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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전북 2012년4월호] 미안하다 똥아! 고맙다 똥아!

두메풀 2012. 8. 14. 21:27
자연과 생태이야기[7] 미안하다 똥아! 고맙다 똥아!
글쓴이 서광석 (남원생태학교)    [2012년4월호]   

미안하다 똥아! 고맙다 똥아!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보고 살자-


요즘 시골에선 구수한 향을 많이 맡게 된다. 나무 밑둥마다 숙성된 거름이 수북하다.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준비하며 그동안 모아 삭혀 두었던 똥거름을 논과 밭에 내느라 바쁘다. 거름을 낸 밭에서 이랑과 고랑을 다시 다듬고 여러 푸성귀 씨앗도 뿌리고, 씨감자도 심는다. 이런 때 학생들과 생태체험 하느라 시골을 다니다보면 어떤 녀석은 코를 막기도 하고, 누군가는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물을 죽이는 똥 - 수세식 화장실
그래 맞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972년 서울시내 화장실 중 수세식은 놀랍게도 7%에 불과했지만, 현재 전국 가구의 97%가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요즘 아파트나 공공시설의 화장실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멋진 사진이나 그림을 곁들인 격언들이 걸려있다. 깨끗한 정도를 넘어 화려하기까지 하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방향제를 사용해 기분 좋은 냄새가 나게 한 곳도 있다.
예부터 농촌과 달리 도시에서 똥오줌을 처리하는 건 골칫거리였다.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 똥오줌을 거리에 마구 버려 - 여성들의 하이힐이 생겨난 이유란다 - 보기에도 안 좋고 위생에도 큰 문제였다. 1775년 영국의 알렉산더 커밍스가 처음 발명했다고 알려진 수세식 변기는 현대식 도시문명의 청결함을 가져다 준 위대한 발명품이다. 이 수세식 변기는 악취가 실내 공기 중으로 배출되지 않도록 만들어져, 이제까지 바깥 멀리 있었던 뒷간을 실내의 한 공간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나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발달한 건축기술과 함께 이 변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수세식 변기에서 내가 싼 똥은 어디로 갈까?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내 눈 앞에서 사라진 똥과 오줌은 그 10배가 넘는 물과 함께 정화조를 거쳐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간다. 하수처리장에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묻고, 태우고, 재활용하고, 72%는 바다로 버려진다. 즉, 수세식 변기는 겉보기에 깨끗하나 음식 → 똥 → 똥 + 물 (똥물) → 하천방류로 이어지며 생태적으로 순환되지 못한다. 똥오줌을 빨리 버려야할 쓰레기로 여겨, 눈에 안 띄게, 냄새가 안 나게 멀리 보내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복합오염의 주범이 된 것이다. 그 오염물은 생태계를 망가지게 하고, 결국 돌고 돌아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또한 이 분뇨처리 과정에서 하루에 한 사람이 1.5L 페트병 60개, 90L에 해당하는 아까운 물을 하수도로 흘려보낸다. 보통 가정에서 쓰는 수돗물의 27%를 화장실에서 쓴다. 자원낭비가 엄청나다. 먹을 물을 구하러 한나절을 왕복해야하는 사람도 우리 지구별에 같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이 수세식 변기는 도시문명을 이끈 발명품이자 지구생태계를 파괴한 으뜸 발명품인 것이다.

밥이 똥이요, 똥이 밥이다.
한자로 똥 분(糞)자는 똥이 ‘쌀(米)의 다른 모습(異)’임을 나타낸다. 쌀과 똥은 다른 형태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밥이 똥이요, 똥이 밥인 것이다. 다양한 유기물과 영양분이 풍부한 똥은 다시 훌륭한 거름이 되어 작물을 자라게 하고, 인간은 그 작물을 먹는다. 돌고 돌아 생태적으로 완벽하게 순환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똥은 훌륭한 ‘밥의 재료’로 수 천 년 이상 이용돼왔다. 예전에는 똥이 거래되기도 했고, 한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똥을 몰래 퍼 갈까봐 감시까지 했다. 똥개와 똥돼지가 맛있는 이유도 똥의 풍부한 영양분 때문이다. 옛말에 ‘기회자 장삼십, 기분자 장오십’이란 말이 있다. 재를 버리면 곤장 30대,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 50대라는 뜻이다. 똥이 가장 좋은 거름이란 얘기다. 똥의 가치는 20세기 초 서구에서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히람 킹(1848∼1911)은 똥을 땅으로 되돌리는 동양식 농법을 극찬했다. 그는 저서 ‘사천년의 농부들: 중국과 한국, 일본의 영구적 농업’에서 “모든 종류의 분뇨는 퇴비가 돼 땅에 뿌려지며 이는 서양보다 훨씬 효율적이다”고 적었다.


[사진] 선암사 해우소. 1층은 거름을 퍼내기 위한 공간이고, 사람들은 2층에서(실제로는 반대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1층) 볼 일을 본다. 선암사 스님들의 뒷간 자랑 - "우리 해우소에서 아침에 일을 보고 난 뒤 울력을 마치고 저녁에 돌아오면 그때쯤이나 똥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땅을 살리는 똥 - 재래식 뒷간
우리네 똥을 에둘러 점잖게 ‘뒤’라고 한다. ‘뒤’를 보는 공간을 뒷간, 측간(厠間), 치간, 정랑(淨廊), 통시 등 다양하게 불러왔다. 예전에는 대부분 변소(便所)라는 수거식(收去式, 일명 푸세식)이 우리의 일반적인 뒷간 형태였다. 그 외에도 아궁이의 재를 이용한 잿간, 절간의 자투리 공간인 언덕을 이용한 해우소(解憂所), 똥돼지의 먹이 공급원으로 쓴 통시형 뒷간 등이 있다. 이런 우리의 전통 뒷간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밥 → 똥 → 거름 → 밥으로 도는 생태순환의 고리에서 자원을 재생산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똥과 오줌이 쓰레기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었다.
내가 어릴 적 시골 변소는 똥과 오줌을 함께 모아놨는데, 냄새도 심하고 늘 구더기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징그러웠다. 잿간을 겸하고 있었는데, 밤에는 어두운 조명 때문에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시골생활을 하고 싶어서 십여 년 전 귀촌하면서 처음에는 ‘부춧돌 뒷간’ 방식으로 생활했다. 돌 두 개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볼 일을 본 뒤 이를 톱밥이나 재를 섞어 한쪽에 쌓아놓는 방식이었다. 그 후 몇 년 전부터는 선암사 해우소를 모방하여 2층 구조로 간단하게 생태뒷간을 만들었다. 몇 계단 올라가서 볼 일을 보고, 그 아래층에서 거름을 거두어 밭으로 내간다. 오줌은 따로 분리해서 받고, 똥은 눈 다음 톱밥, 낙엽 등을 한 삽 떠서 부어주면 켜켜이 쌓이는데, 냄새도 별로 나지 않고 불결하지도 않다. 나의 배설물로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고, 또 다른 생명을 길러낸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 뿐이 아니다. 뒷간이 바깥에 있으니, 시원한 바람도 느끼고, 다양한 새소리도 듣고, 먼 산의 변화도 즐긴다. 쪼그리고 있다 보면 평온해지면서 마음이 맑아짐을 느끼곤 한다. 저녁에는 뒷간에 오가며 별을 헤기도 하며, 운 좋으면 별똥별도 본다. 실내의 화장실은 1년 내내 똑같은 닫힌 공간이지만, 실외의 뒷간에서는 보는 풍광이 사시사철 달라지는 호사를 누린다. 이렇듯 뒷간은 나에게 배설의 쾌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쁨을 주는 행복한 공간이다.

도시 화장실에서 생태적으로 살기
똥의 운명을 생각하면 수세식 화장실을 쓸 때마다 똥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하다. 생태뒷간을 쓸 때는 거름이 되는 똥에게 고맙고 마음도 편하다. 도시는 근본적으로 반생태적인 공간이다. 그렇지만 도시에 살면서도 아쉽지만 생태적으로 화장실을 쓸 수 있다. 절수형 양변기를 설치하기도 하고, 양변기 안에 벽돌이나 물 채운 병을 넣어두면 물을 절약할 수 있다. 또 하나 문제가 화장지다. 여행지에서 한국사람이 다녀가면 화장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너무 많이 쓰는 것이다. 이현주(목사, 동화작가)님은 보통 화장지 2~3칸으로 뒤처리를 하신단다. 우리나라 목재 자급율은 6%밖에 안 된다. 하루 600여명이 다녀간다는 서울의 정토회관 화장실에는 아예 화장지가 없다. 인도식으로 뒷물하고 뒷물수건으로 닦는다. 생활혁명이 따로 없다[인터넷으로 다시보기 : EBS - 하나뿐인 지구 - 제809회 생활 속의 작은 혁명, 정토회의 쓰레기 제로 운동].
인간이 일생동안 1년 이상을 보낸다는 화장실(化粧室). 이 곳은 세수하고 화장고치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는 곳임을 다시 생각한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살피자.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먹는 것만큼, 내가 싼 똥으로 흙을 살리자. 똥이 밥이 되고 다시 몸이 되는 과정을 아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똥 오줌에도 도가 있다(道在屎溺·도재시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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