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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전북 2012년6월호] 갈등 : 갈? 등?

두메풀 2012. 8. 14. 21:32
자연과 생태이야기[9] 갈등 : 갈? 등?
글쓴이 서광석(남원생태학교)    [2012년6월호]   

갈등 : 갈? 등?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등(藤)
5월을 보내면서 새삼 소나무의 꽃가루, 즉 송홧가루에 놀랐다. 어찌나 많이 날리는지 지금도 비가 온 뒤 물이 흘러 고였던 곳 근처는 노란색 그림이 남아있다. 날씨는 거의 한여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등나무에 옅은 보라색 꽃송이가 기다랗게 늘어져 눈도 코도 행복했었다. 학교나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등(藤)은 낙엽지는 덩굴성 나무다. 도시 사람들에게 등나무 그늘은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좋은 휴식처가 된다. 꽃향기에 취해 그늘에서 쉬는 맛은 꿀맛이다. 꽃말이 ‘환영’인데 참 어울린다.
그런데 등나무를 옛 선비들은 한사코 싫어했다. 등나무는 다른 물체에 의지해야 일어서고, 뼈대가 없으며, 어미의 목을 감아 죽이는 나무라하여 독야청청 홀로 서며 늘 푸른 소나무와 비교되었다. 거기에다 울 안에 심으면 집안 일이 그 줄기처럼 꼬인다는 속설로 인해 멀리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오래된 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



[사진: 등나무 꽃차례]



[등나무 – 오른쪽 감기. 줄기가 시계방향으로 감고 올라간다]


< "저건 또 무슨 꽃이지?" 적잖이 비탈진 곳에 칡덩굴이 엉키어 꽃을 달고 있었다. "꼭 등꽃 같네. 서울 우리 학교에 큰 등나무가 있었단다. 저 꽃 을 보니까 등나무 밑에서 놀 던 동무들 생각이 난다.">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다른 나무를 친친 감고 오르는 칡(葛.갈)
소설 ‘소나기’에 나오듯이 등나무와 비슷한 게 칡(葛.갈)이다. 주로 산에서 볼 수 있는 칡은 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든지 잘 자란다. 줄기가 길게 땅을 기다가 감을 것이 있으면 타고 올라간다. 줄기가 10m도 넘게 자라기도 한다. 칡은 풀이 아니라 나무다. 나무라 해도 겨울이면 가는 가지 끝이 말라 죽는다. 칡은 다른 나무를 친친 감고 올라가 완전히 덮어버리기 때문에 숲을 가꾸는 사람들에게는 골칫덩어리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칡뿌리(갈근葛根)에는 녹말이 많이 들어있어 예전에는 중요한 구황식품이었다. 요즘에도 칡뿌리를 갈아서 만든 갈분으로 갈분국수, 칡냉면을 만들어 먹는다. 시장이나 관광지에서는 시골아저씨가 굵은 칡뿌리를 썰어서 즙을 내 팔기도 하는데, 이 칡즙은 위장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한다. 칡줄기는 질겨서 쓸모가 많다. 산에서 뭔가를 묶을 때 낫으로 칡줄기를 잘라 쓰면 매우 유용하다. 엮어서 삼태기, 바구니 등을 만들며, 싸리비를 튼튼하게 묶을 때도 썼다. 또 부드러운 줄기와 잎은 염소의 먹이가 된다. 꽃도 ‘갈화(葛花)’라 하여 오랫동안 약으로 써 왔다. 한마디로 뿌리부터 꽃까지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참 소중한 식물이다.


[사진 : 칡 꽃차례. 칡도 나무다. ]

칡과 등나무의 만남 : 갈등(葛藤)
칡과 등나무는 같은 콩과(科) 식물로서 사촌 쯤 된다. 등나무가 5월에 포도송이 같은 탐스러운 보라색 꽃차례를 땅을 향해 늘어뜨리는데, 칡은 8월에 홍자색 꽃차례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늘을 향해 피운다. 등나무(인동초, 박주가리 등)는 줄기가 시계도는 방향으로 타고 오르는 ‘오른쪽 감기’ 식물이다. 그런데 칡(나팔꽃, 메꽃 등)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오르는 ‘왼쪽감기’ 식물이다. 칡과 등나무 줄기가 만나면 서로 반대방향으로 몸을 뒤집어 꼬면서 상대의 몸통을 조인다. 새끼를 꼬듯 서로 감기고 얽혀서 도저히 풀 수 없게 된다. 갈등(葛藤)이란 단어가 이들 싸움에서 유래되었다. 갈등(葛藤)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칡덩굴과 등덩굴이 얽힌 것처럼 일이 뒤얽혀 풀기 어렵게 된 상태’다.


옳고 그른 건 본래 없어.
상대방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를 뿐.
요즘 신문과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늘 밝고 따뜻한 뉴스보다는 사건 사고와 온갖 갈등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골치가 아프다. 크게 보면 나라 사이에도 늘 갈등이 있고, 나라 안에서도 노사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부자와 서민의 갈등도 있다. 가깝게 보면 부부 사이의 갈등,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고부 간의 갈등 등 사방천지가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삶이다. 그래서 2556년 전 태어나신 붓다께서 사는 게 괴로움이라고 삶의 핵심을 가르치셨나보다.
성현들의 가르침을 통해 갈등의 원인을 살펴보자. 현재 내 인생관과 세계관은 내가 살아온 경험의 산물이다. 다른 사람도 살아온 삶이 다르므로 가치관이 다 다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 우리는 요즘 틀리다는 말을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당연하다.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싸울 일이 많이 줄어든다. 옳고 그른 것이 본래 없고 다만 서로의 생각과 입장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갈등이 훨씬 줄어든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만 갇히면 독선에 빠진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면 갈등이 쉽게 풀릴 수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모여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생각처럼 그렇게 행동이 잘 안 된다. 멀리 갈 것 없다. 우선 나부터도 상대방을 꺾으려고 고집을 더 부리곤 한다. 자존심 상하면 싫다. 그런데 사실 남에게 내 생각을 고집하면, 고집하는 내가 괴롭다. 뒤늦게 알아차리고 참회하고 다짐하고... 나 같은 범부중생의 일상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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