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태, 기행/남원생태학교

[교단일기] 마음을 치유하는 자연체험...경향신문에 우리 모임에 관한 내용이 실렸어요.

두메풀 2009. 5. 12. 21:35

[교단일기]마음을 치유하는 자연체험

 복효근 남원 금지중 교사·시인
  • 이번 산행길은 10㎞ 정도 된다고 인터넷 카페에 공지했는데도 저학년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다. 산길 10㎞는 짧지 않은 거리다. 이제 고정 참여자가 제법 생겼다. 부모가 직장에 나가는데 아이들끼리만 둘 수 없어서 보낸다는 가정도 있다.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부모가 함께 참여하기도 하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교사의 권유에 이끌려 나온 경우도 있다.

지난번 봄꽃 기행에 아내는 학생 하나를 데리고 나왔다. 거듭 일탈행위를 하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내는 아이라고 한다. 지난해에 담임을 맡으면서부터 아내가 반찬도 만들어다 주고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아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 아이를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제 이 모임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넘었는데 이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산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생각이었던 아내는 실망이 큰 것 같았다.

단 몇 번의 지도와 관심으로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아이의 마음속에 관심의 씨앗을 심어놓고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선생님과 약속을 해놓고 믿음을 저버린 아이도 마음이 편할 리 없을 것이다.

엊그제 이 지역에 몰아친 돌풍에 크나큰 나무들의 가지가 찢겨 곳곳 산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이들은 송진 냄새를 맡아본다. 진달래는 벌써 지고 산철쭉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게 그거 같은데 이제 비로소 아이들은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할 줄 안다. 여기저기서 새소리들이 들린다. 우리가 산에서 “야호!”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은, 알을 낳고 품는 새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설명한다. 떠들어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뜻을 같이한 몇 명의 교사가 한 달에 한 번은 학생 그리고 일반인과 함께 자연을 접할 기회를 갖고 생태적 감수성을 길러보자고 한 데서 이 활동이 시작되었다. 쉬는 토요일(놀토)에 적당한 프로그램이 없어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도, 늘 학업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도 더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다.

평소엔 인터넷 카페에서 온라인 활동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주제를 정해 꼭 하천이나 습지 또는 산을 찾아 생태체험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제 도회지와 다름없이 이 시골아이들도 무한경쟁의 전장에 놓여 있다. 방과후 특기적성 활동에 교과 관련 활동이 허용되면서 사실상 중학교에도 보충수업이 전면 실시되고 있다. 그뿐인가. 자율학습에, 학원 수강에, 숙제에, 과외에 좀체 쉴 틈이 없다. 그렇게 지치고 치인 이들이 도피처로 찾는 것이 컴퓨터 게임이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해방감과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 자연체험만한 것이 있으랴.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또래들과 어울리고 풀과 꽃과 나무와 여러 동물과 대화하면서, 더구나 교사들과 함께 격의 없는 활동을 하다보면 치유와 순치의 효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자연에서 얻은 푸른 기운이 아이들과 우리의 영혼을 조금은 더 풍요롭게 하리라. 아내는 틀림없이 아이에게 다음에는 함께 가자고 넌지시 권유해볼 것이다.

<복효근 남원 금지중 교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