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 땅의 참 주인/나무

오얏 꽃-자두나무

두메풀 2005. 7. 8. 10:28
대한제국 이(李)씨 왕가의 문양으로도 쓰인『오얏 꽃』- 자두나무
  
     
   
옛 사람들은 복숭아와 함께 봄에는 오얏 꽃을 감상하면서 시 한수 읊조리고, 여름엔 익은 열매를 따먹는
과일나무로 자두나무를 많이 좋아했데요.

■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모자도 고쳐 쓰지 말라?

옛말에 오해를 받기 쉬운 일은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으로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으면 마치 오이를 따는 것 같이 보이고, 오얏이 익은 나무 아래서 손을 들어 관을 고쳐 쓰려고 하면 오얏을 따는 것 같이 보이니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삼가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오얏밭이 우리 주변에 흔하였다는 것이죠.

이 옛말에 등장하는 오얏이란 현재 우리가 흔히 과일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자두'를 말하는 것으로
복숭아를 닮은 열매의 색이 진한 보라색이므로 자도(紫桃)라 하다가, 이것이 변해 자두가 된 것
입니다.
순수 우리말 이름은 오얏이고 한자명은 이(李)랍니다.
또한 자도나무, 오얏나무, 추리나무, 자두, 오얏, 이화라고도 불리웁니다.
 
 
■ 이씨 조선왕조의 상징 자두 꽃

오얏은 우리나라에서 김씨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이씨 성(姓)을 상징하는 꽃이며 훗날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꽃이 되기도 했습니다.

<고려사>에 보면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4년 전인 우왕 14년(1388)에 “목자가 나라를 차지한다”라는 노래를 남녀노소 모두 불렀다고 전한다. 종묘제례악으로 세종 31년(1449) 창제된 <정대업定大業> 가사에도 “……삼천 개의 열매 맺은 오얏이 번창하네 / 오얏이 번창하니 즐거움 끝이 없네……”라고 하여 목자(李)가 정권을 잡은 조선 왕가의 번창을 바로 오얏이 많이 달리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오얏나무(자두나무)는 본래 우리나라에 자라던 나무가 아니고 삼국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가져다 심은 수입나무이랍니다.
시경(詩經)에 보면 중국에서도 주나라 시대에는 꽃나무로서 매화와 오얏을 으뜸으로 쳤다 한합니다.
이처럼 오얏나무는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복숭아와 더불어 여러 번 등장하는 옛 과일나무이며, 또 꽃을 감상하는 꽃나무이기도 합니다.

조선이 오얏나무를 왕조의 나무로서 특별히 대접한 적은 없으나,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 오얏꽃은 왕실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1884년 우리 역사상 최초로 우편업무를 시작한 우정국은 1905년 통신권을 일본에 뺏길 때까지 보통우표 54종을 발행했었습니다.

이씨 왕가의 문장인 오얏과 태극 문양이 주조를 이룬 우표였기에 이화우표(李花郵票)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말기 백동으로 만든 화폐에도 표면의 위쪽에는 오얏꽃, 오른쪽에는 오얏나무 가지, 왼쪽에는 무궁화 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또 덕수궁 석조전 용마루, 순종황제 어가, 대한제국 군대 계급장에도 오얏 문양이 들어갔습니다.

 
  중국 원산의 옛 오얏은 귀하신 몸



장미과인 자두나무는 잎떨어지는 넓은잎 중간키 나무로, 흔히 집 주변에 심습니다.
꽃은 봄(4월)에 잎보다 먼저 하얗게 피며 보통 3개씩 달리며 열매(7~8월)는 둥글고 밑 부분이 약간 들어가며 여름에 자주색으로 익습니다. 줄기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우산 모양을 이루고, 나무껍질은 회흑색이며 어린 가지는 자갈색
입니다. 거꾸로 세운 달걀 모양의 잎은 끝이 차츰 좁아지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어긋나기로 달립니다.

품종에 따라 황색으로 익는 자두나무도 있는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자두는 대부분 개량종이고 중국 원산의 옛 오얏은 보기 어렵습니다.

 
 
- 참고자료 : 이유미의 우리나무 백 가지 -
 
     
2005.07.07 입력
산림청 정책홍보팀기자 < foanews@fo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