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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전북 2011년10월호] 자연의 모습은 각각 틀려?

두메풀 2012. 8. 14. 21:09
자연과생태이야기<1>-자연의 모습은 각각 틀려?
글쓴이 서광석 (남원생태학교)    [2011년10월호]   

-한글날과 자연-



나는 반대한다, ‘동주민센터’를
올 10월 9일은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한글날이다. 세계 어떤 글자도 한글처럼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글자가 없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고 한글의 모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추상적으로 상형화해 기본으로 삼았다. 한글은 문자 자체가 발음의 최소 단위인 음소를 중심으로 만든 문자이기 때문에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따라 무수한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실제로 국어에서 생성될 수 있는 음절 글자는 무려 11,172자나 된다. 특히 500년이 훨씬 넘는 과거에 탄생한 했는데도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시대에 한글은 더욱 빛난다. 한글 음절은 자음+모음(+자음)순으로 적는데, 자판으로 치면 한쪽 손으로만 치지 않고 왼손+오른손(+왼손)을 규칙적으로 입력하게 되어있어 영어단어 입력할 때처럼 한쪽 손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웃나라 중국의 간체자를 입력하려면 먼저 알파벳을 치고 그것에 맞는 한자를 선택하는 번거로운 작업해야 한다. 또 서구의 알파벳이나 중국의 한자는 자판이 12개인 휴대전화로 입력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한글은 12개의 자판만으로도 모든 문자 표현이 가능하고 빠른 속도로 문자 전송을 한다. 요즘 젊은 엄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누구나 배우기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해주신 세종대왕께 정말 고맙고 고마운 날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이 영어로 넘쳐난다. 대기업들은 알파벳 이니셜로 이름을 지어 부른다. KT, LH가 뭐하는 곳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알까? 심지어 정부는 몇 년 전부터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파출소’를 ‘치안센터’로 바꿨다. ‘주민센터’는 ‘주민’이라는 우리말과 ‘center’라는 ‘english’의 합성어이다. 정부의 공식문서 내지는 관공서 명칭으로는 절대 부적절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합성어는 국적 불명의 언어다. 대한민국의 관공서에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공서는 운영주체와 이용주체 모두 한국인이며, 외국인이 이용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한국의 거주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목적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中心’이라는 자국어로 순화하여 쓴다. 외국어가 세련되었다고 생각하는 행정자치부의 얼빠진 공무원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기회에 ‘주민센터 이름 반대운동’을 하는 한글문화연대에 박수를 보낸다.

가려 쓰자 : ‘틀리다?’ ‘다르다?’
학생들과 함께 자연으로 나가서 이야기 나누다보면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다. “이건 아까 그 꽃과 틀리네요.”, “전에 봤던 나뭇잎과 이건 틀리죠?”, “종류에 따라 생김새가 틀리구나.” 이런 사례뿐만 아니라 ‘다르다’고 써야할 때에 ‘틀리다’는 표현을 요즘 주변에서 참 많이 쓴다.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는 뜻이고,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는 뜻으로 서로 다른 말이다. 심지어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 생각은 틀린데...”라며 말하는 걸 보았다. 처음부터 틀린 말은 할 필요가 없잖은가.
나는 요즘 우리 국민들이 쓰는 말 중에서 ‘틀리다’는 표현을 가장 가려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의식의 반영이고 문화의 산물이다. 상대방과 내 생각이 ‘다른’ 것이 우리네 인생사인데, 내가 옳고 상대가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사회에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나와 너, 내 가족과 이웃 가족, 내 마을과 이웃 마을, 내 종교와 이웃 종교, 내 나라와 이웃 나라가 서로 대립하고 심지어 전쟁을 한다. 사랑과 관용을 근본교리로 삼는 종교끼리 서로 전쟁을 해 사람을 죽이는 건 인류역사상 모순의 극치다. 이 대립과 싸움의 근본원인인 상대방이 ‘틀리다’는 생각은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대단히 경계해야 되고 조심히 써야 되는 말이다.

서로 다르면서 조화(和而不同)를 이루는 자연!

가죽나무와쑥부쟁이

우리 인간들은 자연의 모습에서 배우고 또 깨쳐야한다. 눈을 사방으로 돌려 하늘과 땅, 산과 강, 어디 같은 곳이 있던가. 가죽나무 가지에서 자란 잎 하나하나[그림 1], 쑥부쟁이 꽃잎 한 장 한 장이 비슷하지만 다 다르지 않던가[그림 2]. 꽃이 잎한테 너도 꽃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 비교하고 다투지 않는다.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이 모두 꽃이 될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되면 그 식물은 곧 죽음이다. 풀과 나무는 풀과 나무모습으로, 곤충은 곤충모습으로, 물고기는 물고기 모습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다.


코스모스

흔히 가을을 대표하는 코스모스 꽃(살살이꽃)을 잘 살펴보자[그림 3]. 눈을 크게 뜨고 중심부분을 잘 보면 밤하늘의 별들이 많이 보인다. 말 그대로 코스모스, 즉 우주이다. 한의학에서는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의식하여 자연(대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체의 생리를 해석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이에 소우주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 몸에서도 피부, 혈액, 뼈, 근육, 장기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 소통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손가락이 발가락 과 비교하여 서로 ‘틀리다’고 나무라지 않고 ‘다름’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심장 혼자서, 눈 따로 혀 따로 살 수 없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 삼라만상의 세계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생태계에서 어느 것 하나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자기 혼자 잘 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혼자서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을 넘어 무지이다. 또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감의 지혜 및 정서가 부족한 상태, 즉 생태맹(生態盲)이다.

‘아름’답다 = ‘나’답다!
무엇이 아름다움일까? 아름답다는 말에서 ‘아름’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고어에서 ‘나’를 뜻하기도 한다. 가장 ‘나’다운 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은 결국 각각 ‘나’다워서, 서로 달라서 아름다운 것이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즉, 나와 상대방이 서로 다름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 세상에서도 개성과 다양성이 생명이다. 이것이 부정되는 사회는 진보가 없고, 스스로 개성을 죽이는 사람에게도 진보는 없다. 그러나 획일적인 규칙과 사고를 강요하고 각 사람의 자유와 개성은 죽이는 “동이불화(同而不和)하는 소인”의 세상이 너무 흔하다. 늘 만나는 개성있고 발랄한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기준하나로 줄 세워 모두 바보로 만드는 우리네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네 일상사에서 만나는 모두는 ‘틀리지 않게 서로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 뿐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겠다.
얼마 전 ‘짜장면’ ‘복숭아뼈’ 등 우리 주변에서 많이 쓰는 말들을 표준말로 인정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에서 ‘틀리다’는 표현을 많이 써도 이것을 표준말로 인정할 수는 없다. 절대 안 된다. ‘틀리다’ ‘다르다’는 단순한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관과 세계관의 차이를 만드는 출발 행동임과 동시에 생명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열쇠이다. 고백하건데 나도 ‘다르다’고 해야 할 때 ‘틀리다’고 잘못 말해서 지인들로부터 여러 번 혼나고 나서야 고친 경험이 있다. 혹시 주위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틀리다’는 말은 가려 써야한다”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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