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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전북 2013년7월호] 다양하고 놀라운 꽃들의 지혜

두메풀 2013. 7. 17. 19:09

 

 

 

 

 


 

[자연과 생태이야기 22]다양하고 놀라운 꽃들의 지혜
글쓴이 서광석(남원생태학교)    [2013년7월호]   

- 식물들의 복잡한 성생활?


꽃은 ‘성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많지만, 그 중에 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매우 많을 것이다. 우리는 형형색색의 꽃을 보면서 그 섬세하게 아름다운 신의 작품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는다. 꽃을 관찰하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세파에 시달린 마음을 정화하고, 심오한 자연에 푹 빠지게 된다. 아무리 사악한 사람이라도 한 송이 연약한 꽃 앞에서 나쁜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만약 꽃이 없다면? 그 삭막한 세상, 상상할 수도 없다!
식물 중에 꽃피지 않는 종류도 있을까? 있다. 식물계kingdom에는 현재 12문에 약 26만 종의 식물이 있다. 그 중 우산이끼, 솔이끼 등의 이끼류 1만5천여 종, 고사리, 고비, 쇠뜨기 등의 양치류 1만1천여 종은 꽃이 피지 않고 홀씨(포자)로 번식하는 종류다. 이들을 민꽃식물이라고 부른다.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은 정자가 물속을 헤엄쳐 난자로 이동하기 때문에 물가에서 살거나 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들을 제외하고 식물의 약 90%는 꽃이 핀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한마디로 ‘성기’다. 꽃은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 이렇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성기는 평생 몸의 일부분이며, 감춰두고 은밀하게 쓴다(?). 하지만 식물의 꽃은 인생의 절정기에 잠깐 나타나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핀다.

아름다운 꽃 – 목숨 걸고 노력한 결정체
오래 살거나 자신과 닮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애쓰는 것은 모든 생물의 본능이다. 그런데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꽃피지 않고 유전적으로 동일한 후손만 남긴다면(무성생식) 멸종될 위험이 매우 높다. 따라서 유성생식을 하여 유전적으로 다양한 후손을 만들어야 대대손손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그 화려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바로 그 꽃은 자신의 자손을 남기기 위한 식물의 수억 년에 걸친 노력, 즉 진화의 산물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제자리에서 추위 더위를 견디며 온갖 생로병사, 곧 싹 트고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광합성) 성장하고, 꽃 피어 자손번식까지 해야 한다. 동물처럼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가 짝짓기를 할 수 없는 식물은 어떻게 자기와 다른 유전자를 만날 수 있을까?  먼저 겉씨식물(소나무, 은행나무 등)들은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흩날리는 방법을 썼다(풍매화). 이때 엄청나게 많은 꽃가루를 만드는 건 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일부 꽃 안에는 영양가 많은 꽃가루와 밑씨가 있었는데, 그러던 중 세상에 곤충이 나타났다. 꽃은 참 좋은 먹을거리였다. 이런 먹이를 찾아 곤충들이 이 꽃 저 꽃 찾아다니는 중에 곤충의 몸에 달라붙은 꽃가루가 다른 꽃에 전달되었다. 곤충에 의한 꽃가루받이는 겉씨식물의 바람에 의한 꽃가루받이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지구 역사상 최대의 상생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꽃들은 더욱 지혜를 발휘해 색으로, 모양으로, 크기로, 향기와 꿀로 꽃가루 심부름을 하는 동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목숨 걸고 노력했다.  

식물들의 다양한 성
씨앗식물의 약 80%는 암술·수술이 한 꽃 안에 있는 암수한꽃, 암수한몸 식물이다. 또 10%는 한 그루에 암꽃, 수꽃을 따로 피우는 암수딴꽃, 암수한몸 식물이다(예: 호박, 오이, 수박, 소나무 등). 나머지 10%(우리나라는 약 3%)는 동물처럼 암수딴몸이다(예: 은행나무, 버드나무, 뽕나무, 생강나무 등).
다양한 후손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유성생식을 하는 식물은 딴꽃가루받이를 해야 한다. 한 식물 안에서 암꽃과 수꽃이 분리되면 자기꽃가루받이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나무[사진]는 높은 가지에 암꽃을 달고, 수꽃은 아래가지에 만든다. 그래서 높이 달린 암꽃은 다른 소나무에서 날아오는 꽃가루를 잘 받아들인다.


소나무 수꽃-송홧가루가 가득하다.


소나무 암꽃-솔방울로 자란다.

암수한꽃 식물이라도 자기꽃가루받이보다 딴꽃가루받이를 더 선호한다. 가장 대표적인 타가수정 전략은 자기꽃불임성이다. 자기꽃불임성이란 꽃가루가 같은 꽃의 암술머리에 붙었을 때 꽃가루관의 생장이 억제되는 현상이다. 속씨식물 종에서 약 절반이 자기꽃불임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꽃의 꽃가루로 가루받이가 일어나야만 씨앗을 만들 수 있다.

꽃들의 다양한 지혜
왜 종에 따라 꽃 피는 계절이 다를까? 꽃피는 시기는 대개 특정 곤충의 활동시기, 생활사와 관련되어 있다. 키가 작은 풀꽃들은 대개 곤충에 의해 꽃가루가 이동하기 때문에 나뭇잎이 가리기 전인 이른 봄에 꽃이 핀다. 참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는 봄철 새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핀다. 이들은 풀과 달리 꽃가루가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풍매화가 대부분이다. 잎이 있으면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의 이동이 막히기 때문에 벌거벗은 채 꽃이 핀다. 봄이 무르익어 기온이 올라가면 곤충들이 많아진다. 그러면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아진다.

한 번 꽃이 피면 얼마나 오래갈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낱개의 꽃을 보면 원추리·나팔꽃·닭의장풀[사진]은 겨우 반나절 또는 한나절 피었다가 시들지만, 백일홍같이 훨씬 오래가는 꽃도 있다. 백일홍나무(배롱나무)는 꽃 하나가 지고나면 또 다른 꽃이 계속 피어나 백일 동안 꽃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무궁화·호박꽃도 비슷한 경우다.


닭의장풀 – 한나절 만에 꽃이 시든다.


작은 꽃을 가진 식물은 작은 꽃이 많이 모여 큰 꽃처럼 보이는 꽃차례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해바라기[사진], 구절초 같은 국화과 식물은 꽃차례 하나가 한 송이의 큰 꽃처럼 보이는 두상꽃차례를 하고 매개동물을 유인한다.
꽃이 모인 꽃차례는 화려함을 배가시켜 매개동물을 유인하는 것 외에도 다른 이점이 있다. 대개의 경우 꽃차례에서 모든 꽃이 동시에 피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방향으로 차례대로 피게 된다. 이렇게 하면 꽃 하나의 수명은 짧더라도 오랫동안 꽃이 필 수 있다. 꽃피는 기간이 길면 매개동물은 오랫동안 먹이를 구할 수 있고 식물은 오랫동안 꽃가루받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이득을 보게 된다.


해바라기 : 두상꽃차례 – 작은 꽃들이 바깥쪽부터 차례대로 피고 지며 오랫동안 꽃 핀다.


많은 식물들이 헌 꽃도 새 꽃인 양 오랫동안 매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개곤충은 멀리서 꽃을 보고 날아오는데 특히 꽃이 많은 식물을 먼저 찾아오기 때문에 늙은 꽃을 매달고 있는 것이 식물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가까이 오면 늙은 꽃보다는 향기와 유인색소가 선명한 새 꽃을 선택한다. 그래서 곤충에 묻어온 다른 꽃의 꽃가루는 암술머리가 깨끗한 새 꽃에 전달된다. (예: 인동덩굴[사진])


인동덩굴 – 곤충들은 헌 꽃(노란색)보다는 수술이 곧추서있는 새 꽃(흰색)을 선택한다.


꽃의 유혹 – 색깔과 향기
꽃의 색은 대개 꽃잎의 색을 나타내고, 꽃받침과 꽃차례 밑에 붙은 총포는 녹색인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꽃받침이 전적으로 꽃잎의 역할을 하는 식물도 있다. 산딸나무[사진]나 약모밀(어성초) 꽃은 십자형으로 놓인 희고 큰 꽃잎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식물 모두 이들 흰 ‘꽃잎’은 사실 총포이며 가운데 모여 있는 꽃은 매우 작고 볼품이 없다.
사실 우리가 보는 꽃 색과 곤충이 보는 꽃 색은 전혀 다르다. 동의나물 꽃은 자외선을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완전히 노랗게 보이지만 자외선을 인지하는 벌이나 다른 곤충에게는 노란 중심에 검은 테두리를 두른 것으로 보인다. 매개동물이 어느 정도 가까이 왔을 때 꽃잎에 깔린 허니가이드라 불리는 유인색소가 꿀샘으로 가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
꽃은 향기로도 유혹한다. 꽃향기는 대개 꽃잎의 특정 부위에서 생산된다. 향기는 낮에 움직이는 벌이나 나비에게도 중요한 신호이지만 색 구분이 안 되는 밤에 날아다니는 야행성 매개동물에게 더욱 더 중요하다.



산딸나무 – 십자모양으로 된 4장의 잎은 꽃잎이 아니고 꽃을 싸고 있는 총포조각이 발달한 것이다.


세계는 한 송이 꽃
위에 쓴 글 한 부분을 정정하겠다. 꽃은 단지 수억 년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사실 꽃은 우주 시작부터 수많은 존재들이 그물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한 역사적 산물이다. 그저 며칠 피다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주적 존재인 것이다. 어디 꽃뿐이랴. 우리 앞의 세상 만물은 모두 우주 역사를 담고 있다. 우주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담고 있다. 나도 우주고 너도 우주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만공선사의 ‘세계일화世界一花’ 중에서」
지금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웃음꽃’을 지으며...

[참고]꽃의 제국, 강혜순 지음, 다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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