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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전북 2012년9월호] 벼꽃 앞에서 농(農)을 생각하다

두메풀 2012. 9. 4. 14:09

 

 

자연과 생태이야기 [12]  벼꽃 앞에서 농(農)을 생각하다
글쓴이 서광석(남원생태학교)    [2012년9월호]   

-농업, 농촌, 농민을 살려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식물 - 벼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있다. 낮에는 사람 체온을 웃돌고 밤에도 열대야로 고생했다. ‘여름’은 모든 식물이 열매를 맺는 계절로 ‘열매’의 어원이다. (그래서 농부를 여름지기라고도 한다.) 말 뜻대로 여름 내내 오곡백과는 열매 맺고 강한 햇살아래 익어갔다. 사람들은 힘들지만 여름은 또 여름다워야 풍성한 가을을 기약한다.
수많은 열매 중에 가장 귀중한 건 뭘까? 바로 쌀이다. 8월 어느 날, 논가에 앉아 한창 핀 벼꽃[사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덥다고 투덜대는 동안 너는 열심히 꽃을 피우고 열매 맺고 살찌고 있었구나...’ 앗! ‘날이 더워 짜증난다’는 내 생각에 머물지 말고, ‘날이 더워 곡식이 잘 익어갑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실상을 떠올려 마음챙김하라던 스승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진] 벼의 꽃


우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듯 날마다 먹는 밥에 대한 고마움을 망각하고 산다. 세상 누구나 밥을 먹어야 산다. 세계인의 40%가 주식으로 이용하는 작물인 벼.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식물인 벼의 한살이를 간단히 살펴보자.
봄에 좋은 볍씨를 골라 이앙기 모판에서 기른다. 볍씨는 그 껍질인 겨 속에 배젖과 배가 있다. 배가 배젖을 영양으로 하여 자라서 싹이 튼다. 씨를 뿌린지 40일쯤 지나 본잎이 5∼6장쯤 나오면 모내기를 한다. 벼꽃은 벼 알 하나하나에 암술과 수술이 있으며 줄기를 싸고 있던 잎집을 가르고 한꺼번에 밖으로 나온다. 벼의 꽃피기는 7~8월 오전 8시경부터 11시경에 왕성하게 피고 전체의 70%가 이 시간대에 핀다. 한꽃이 피고 지는 데는 2시간정도 걸린다.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되면 수정이 일어나 벼 알이 자라게 된다. 이삭 한 개에는 100개쯤의 꽃이 피며, 이삭이 여물면 고개를 숙이며 잎과 줄기는 점점 초록빛이 없어지고 노랗게 된다. 볍씨 한 알이 뿌리내려 600알정도 쌀이 된다.
이 과정은 햇빛과 비와 바람 그리고 농부의 땀방울이 있어야만 되는 우주적 작업이다. 쌀미(米)자를 조각내면 八 + 十 + 八. 즉, 농부의 손길이 88번 닿아야 쌀 한 톨이 된다.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습지, 논의 가치

벼가 자라는 땅, 논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습지다. 이 논의 가치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첫째, 논은 많은 생물들의 서식 공간으로 매우 중요하다. 흙과 물속을 가득 메운 각종 미생물, 그들을 기반으로 개구리, 거머리, 우렁이가 살아간다. 또 메뚜기, 방아깨비, 거미, 잠자리 등 많은 곤충들이 산다. 뿐만 아니라 쥐, 참새, 제비, 백로 등 수 많은 생물들이 모여 사는 작은 생태계다.
둘째, 논은 홍수를 조절하는 또 하나의 녹색 댐이다. 논의 빗물 저수량은 1ha(1만㎡)당 2천3백78t이라고 한다. 나라 전체로 보면 연간 26억t이며, 이는 팔당댐의 홍수 조절량보다 몇 배 더 많다고 한다.
셋째, 논은 지구온난화를 막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단위 면적당 숲의 그것보다 높은 수준이다. 논에서 광합성으로 얻은 산소는 연간 1천만 t 으로 돈으로 따지면 2조원이 넘는다.
넷째, 논은 대기를 냉각시켜준다. 적외선촬영 결과 도시 한가운데의 지표온도는 40℃를 넘어선 반면 논은 21℃에 머물렀다한다. 무려 19℃ 차이다. 논의 물이 증발하면서, 또 벼의 증산작용으로 열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이외에도 논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보존된 농촌에서 사람들은 평온과 휴식을 얻는다. 또한 환경보전과 전통문화 계승 등 여러 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논(쌀농사)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56조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논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또 하나의 자연인 것이다.
        
선진국 = 농업을 중시하는 나라
농업, 농촌, 농민이 망하면 나라가 망했다

그러나 경지 면적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0.9%씩 줄었고, 쌀농사가 줄어들면서 전국의 논 면적이 100만㏊ 아래로 떨어졌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사료용 포함)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3개국 가운데 28위다. 곡물 수입량이 세계 5위나 된다. 프랑스가 곡물자급률이 329%에 이르고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100%를 넘는 것에 비하면 걱정스런 수준이다.  쌀은 국내 생산량이 수요를 조금 웃돌고 있지만 밀과 옥수수는 99%, 콩은 93%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몰아붙이며 자유무역(FTA)에 집중하면서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식량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최악의 폭염과 가뭄이 미국과 러시아 등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의 농산물 가격이 카길과 같은 곡물메이저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슬픈 현실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은 자주 반복될 것이다.
정부 일각과 개방론자, 여론 주도층들은 말한다. “우리 쌀값이 미국 및 중국 쌀보다 3배 이상 비싸다”고. 그런데 이는 단순 비교일 뿐이다. 위에서 살펴본 공익적 기능을 포함하여 비교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쌀농사를 지어 소비하는 것이 훨씬 우리 국가와 국민에 공공이익이 된다.
내가 존경하는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은 “영국,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및 유럽 각국의 가족농업이 국제시장에서 오늘날 어떻게 해서 광활한 농토 위의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의 대기업 농업과 당당히 맞서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들 나라들은 지금까지 막대한 국가예산을 농업부문에 쏟아 부어 자국 농업의 자생력을 북돋우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농업이 없는 나라, 농촌이 없는 도시, 농민이 없는 민족을 가지고서는 21세기에도, 그 후에도 국가경영을 온전히 감당해낼 수 없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인구 비율은 6%정도다. 이 농업인구를 10%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또 농업 정책도 대농·화학농법 중심에서 소농·생태농업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소농이 유기농산물을 생산해서 여러 협동조합을 통해 도시소비자와 긴밀하게 만나야 한다. 지난 총선 때 녹색당은 농민기본소득제를 공약했다. 농민들의 공익적 기여도를 감안해서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農)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농(農)은 우리의 근본이다. 우리는 이 근본에서 너무 멀리 왔다. 농업, 농촌, 농민이 망하면 나라가 망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이제 다시 근본을 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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