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아니요. 싫은데요]
안녕하세요.
요즘 받는 편지 가운데,
저에게 즐거운 한가위 되라는 분이 많으십니다.
일일이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릴게요.
싫습니다.
저는 즐거운 한가위가 되기 싫습니다.
즐거운 명절 되라고요?
그것도 싫습니다.
착한 사람이나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 멋진 사람은 되고 싶어도,
'즐거운 한가위'나 '즐거운 명절'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한가위'가 사람인가요? 식물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무슨 미생물인가요?
제가 농촌진흥청에 다녀도 그런 동식물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저는 한가위를 즐겁게 보내거나, 재밌게 누릴 수는 있지만,
'즐거운 한가위'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는 영 어색한 말입니다.
굳이 따지면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되세요.'라는 명령형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영어 번역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는
'한가위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가위를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한가위 즐겁게 보내세요.'로 바꾸는 게 좋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즐거운 관람 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거운 쇼핑 되세요, 좋은 시간 되세요, 안전한 귀성길 되세요, 푸근한 한가위 되세요 따위도 모두 틀린 겁니다.
사람이 여행, 관람, 하루, 쇼핑, 시간 따위가 될 수 없잖아요.
사람이 즐겁게 여행하고, 재밌게 보고, 행복하게 보내고, 즐겁게 시장을 보는 겁니다.
좀 삐딱하게 나가볼까요?
저에게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하루'가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하루살이'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큰 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절대 '하루'나 '하루살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날'이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날파리'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거 저에게 욕한 거 맞죠?
저는 절대 '하루살이'나 '날파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살게 그냥 놔두세요. ^^*
여러분,
한가위 잘 보내시고,
한가위 잘 쇠시고,
고향 잘 다녀오시고,
한가위를 즐겁고 행복하고 푸근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보태기)
1.
삐딱하게 나간 게 좀 심했나요?
될 수 있으면 그런 말을 쓰지 말자는 저의 강한 뜻으로 받아주시길 빕니다.
인사는 고맙게 잘 받습니다.
2.
'날파리'는 '하루살이'의 사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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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성제훈의 우리말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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