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신랑의 적극성에 끌려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날부터 남편은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결정합니다. 남편은 저를 무시하고, 작은 일에 의견이 갈려도 절대로 말을 먼저 하지 않으니 항상 제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합니다. 남편을 보통의 남편처럼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질문하신 분이 보기에 남편은 제 맘대로 하고 사는데 보살님은 보살님 맘대로 할 수가 없죠? 그런데 남편한테 얘기 들어 보면 남편도 제 맘대로 할 수 없다고 해요. 제 맘대로 되면 아내한테 불평을 하지 않겠지요. 너는 몰라도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어요? 몰라도 되는 일을 자꾸 꼬치꼬치 묻는다는 것입니다. 보살님이 볼 때는 알아야 할 일을 안 가르쳐주는 것 같지만, 남편이 볼 때는 몰라도 될 일을 자꾸 알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뭐든지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으면 “안녕히 계세요”하고 그만두면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같이 사는 게 낫다는 거지요. 자녀 문제나 부모 문제, 경제적인 필요 아니면 성적인 필요 때문이든, 어쨌든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겁니다. 그런데 같이 살려면 맞춰야 해요. 맞춘다는 것은 내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묻지 마.”, “알겠습니다.” “잔소리 하지 마.”, “알겠습니다.”
서로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살라고 하면 당장 왜 그렇게 살아야하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면 안 살면 돼요. 그런데 같이 살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아내가 물으면 남편이 대답해 주기를 원하는데 안 해 주니까 아내는 짜증이 나지요. 그런데 남편 입장에서 보면, 묻지 않기를 원하는데 아내가 자꾸 물으니 화가 나는 거예요.
내 남편을 다른 남편처럼 만들겠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에요. 다른 남자는 다 좋아 보이고 내 남편만 문제가 있는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집집마다 나름대로 다 불만이 있어요. 사람이 다 다른데, 내 남편이 다른 남자처럼 되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어요.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데 다른 사람처럼 되라고 하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질문하신 분이 행복해지는 길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안녕히 계세요”하고 혼자 나와서 무슨 일이든 해서 먹고사는 겁니다. 그런데 ‘안녕히 계세요.’ 할 때는 이제 다시는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딱 결심을 해야 합니다. 저 산을 보면서는 꽃이 피든지 지든지 상관 안 하잖아요. 꽃이 피면 꽃을 보고 꽃이 지면 그만인 것처럼 무심히 볼 수 있는 게 수행입니다.
만약 같이 살려면, 남편을 그냥 꽃이나 날씨처럼 생각하세요. 피는 것도 저 알아서 피고, 지는 것도 저 알아서 지고, 도무지 나하고 상관없이 피고 지잖아요. 다만 내가 맞추면 돼요. 꽃 피면 구경 가고, 날씨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가고, 비 오면 우산 쓰고 가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선을 봤든 연애를 했든 누가 누구를 쫓아 다녔든 부모가 강요를 했든 그런 건 다 지나간 얘기예요. 그런 건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이 모든 번뇌는 내가 일으킨 분별심이다’하고 내 공부로 삼으세요. ‘우리 남편은 부처님이다’하고 생각하세요. 부처님이라는 말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에요. 그렇게 해가면 남편을 미워하지 않게 되고 또 마음이 일어 날 때는 미워하는 마음을 내 어리석음 탓으로 돌려서 참회하게 되고 그러면 나중에 사랑받게 되죠. 지금 이 분의 사고방식과 행동과 말은 사랑받을 수 있는 태도가 아닙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생각을 바꾸면 업이 바뀝니다. 지금은 ‘우리가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기도를 통해 업을 바꾸면 나중에는 ‘전생부터 우리는 천생 연분이었나?’ 하게 됩니다.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게 아니라 그 운명을 바꾸는 것, 개척하며 사는 게 수행입니다.
법보신문 888호 [2007-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