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컨테이너 장벽 앞에서 6·10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던 11일 새벽, 배달된 <조선>·<중앙>·<동아>(이하 조·중·동)은 일제히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했다.
<중앙일보>는 11일 신문 사설에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항의표시는 충분히 했다…이제 정부를 지켜보자'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은 쇄신하고 여야는 정치 복원하라'고 사설 제목을 뽑았다.
사설 제목은 조금씩 다르지만 말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이제 이만하면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촛불을 처음 켰던 중고생 등 청소년들은 배움의 터전으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로 나선 주부들은 가정으로, 직장인들은 일터로, 그리고 무엇보다 여야 정당은 하루 빨리 국회로 돌아가 국회 문을 열라는 것이다.
조·중·동, 한 일 없이 그저 '제자리'로 돌아가자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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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자 <조선> 사설 '항의 표시는 충분히 했다…이제 정부를 지켜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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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자리'에 돌아가 지켜보자는 것이다. 정부의 쇄신 대책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제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할 때라는 것이기도 하다. 국제 원유가격 폭등과 물가 급등 등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나라 걱정이기도 하다.
좋은 말이다.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또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이들 신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대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상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조·중·동을 포함한 '언론' 자신이다.
조·중·동은 11일 사설 등을 통해서 정부 여당은 물론 정치권이 제역할을 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으리라고 정치권을 비난했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조·중·동이다. 조·중·동이 처음부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라며 바람만 잡지 않았다면, 조·중·동이 처음부터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만 주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성난 민심을 간파한 <조선일보>가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쇠고기만 안 들어오면 된다"라고 뒤늦게 엉뚱한 바람만 잡지 않았더라면 한미육류업체의 자율규제라고 하는 '꼼수'를 정부가 대책이랍시고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협상' 요구는 철저히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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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자 <동아> 사설 '대통령은 쇄신하고 여야는 정치 복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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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조·중·동은 6·10의 촛불이 꺼지기도 전에 다시 이를 왜곡하고 있다. 아니, 당연히 보도해야 할 기본마저 보도하고 있지 않다.
10일 '100만 촛불대행진'에 모인 사람들은 촛불집회 공식 행사를 마치면서 정부 측에 20일까지 재협상에 나설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 "항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중·동은 촛불들의 이런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최소한의 '사실'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놓곤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이제는 정부의 쇄신책을 지켜볼 때라고 호소했다. 여야는 국회에 들어가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언제까지 광장으로 몰려나갈 것"이냐면서 "이제 마음을 합치자"고도 했다.
철저한 기만이다. 조·중·동은 이래서 '촛불'들에게서 '종이 쪼가리' 취급을 받는다. 이래서는 '촛불'들의 미움과 질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11일 그들이 보도한 것처럼 87년 6·10 항쟁 이후 가장 많은 '촛불'들이 모여 '재협상'을 촉구했는데, 그 재협상 목소리는 사실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놓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마음을 합하자"라고 하면, 거리에 나선 '촛불'들이 어떻게 제자리에 돌아갈 것이며, 어찌 마음을 합할 수 있을까?
조·중·동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가 어디인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 역시 더 이상 오판하지 않자면 조·중·동과 함께 해 온 '오늘의 상황'이 결국 어떤 국면을 맞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