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하고 있구나 인간도 못하는 사랑 | |
김일주 기자 | |
김성호 글,사진/웅진지식하우스·2만5000원
큰오색딱따구리 부부가 새끼 낳고 키우고 떠나보내기까지 50일,
“‘사랑할 것’을 찾으라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모든 생명은 정말 진지합니다. 풀 하나, 곤충 한 마리도 허투루 행동하는 법이 없지요. 인간은 살면서 그러지 못한 모습도 많이 보이잖아요. 그런 인간에게도 사랑의 대상이 생기면, 삶이 진지해지고 넉넉해지고 평화로워집니다.” 24일 오후, 김성호 교수(47·서남대 의과대학)는 전라북도 남원에 자리잡은 서남대학교 뒤쪽 산책길에서 ‘동고비’ 암수 관찰에 한창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 교수의 목소리는 산기슭의 정적 속에 또렷했고, 충만감이 넘쳤다. 그는 지난해 봄 큰오색딱따구리를 관찰하며 알게 된 젊은 농부가 방금 전해준 소식을 들려줬다. “큰오색딱따구리가 살던 미루나무 고목 바로 밑에 있는 나무에 청딱따구리 부부가 새로 둥지를 틀고 있다네요.” 지난봄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그 미루나무 고목의 커다란 구멍이 떠올랐을 게다. 어느새 그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내주면서 두 생명을 품어낸 미루나무 고목 앞에서 숙연히 고개 숙였던 그때를 떠올렸다. 지난봄, 그 구멍 안에서는 5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날부터 매일 새벽, 그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미루나무 앞으로 출근했다. 큰오색딱따구리 암컷과 수컷은 교대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행여나 둥지 자리를 천적한테 들킬까봐 부부는 숨을 죽였고, 서로 눈인사 하기도 빠듯하게 번갈아 둥지를 쪼았다. 관찰 6일째, 김 교수는 마음을 온통 이 딱따구리 부부에게 빼앗겼다. 빗줄기가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고 천둥소리가 가까워지자 연구실에 있던 김 교수는 생각한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큰오색딱따구리 암수는 잠자리 둥지에서 비를 잘 피하고 있으련만 마음은 자꾸 숲으로 향합니다. 이제 제대로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마음을 경어체로 기록했다. 애절한 마음이 잘 전달될 것 같아서였을까.
12일째, 암컷이 알을 낳았다. 이제 딱따구리 부부는 하루에 세 번씩 교대하며 알을 품는다. 부부는 자신들의 깃털을 뽑아내 붉은 속살이 드러난 배로 알을 데운다.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바깥공기를 피해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며 밤새 알을 품는 것은 수컷이다. 김 교수는 이런 수컷이 애처롭고, 안쓰럽고, 존경스럽다. “적어도 한 번은 밤을 꼬박 새워 지켜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하루만이라도 혼자 밤을 지키는 수컷의 동행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큰오색딱따구리는 관찰의 대상을 넘어 애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둥지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다리도 끊어지고, 허리도 끊어지고, 곡기를 제때 못 챙겨먹어 체력은 바닥이 나고, 눈은 엄청나게 피곤했지요. 그 대상에게 다 던지는 마음이 없으면, 대상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대상에 미치지 않고서는 이렇게 못하지요.”
딱따구리를 관찰하는 그의 자세는 한없이 낮은 곳을 향한다. 몸을 굽히고 굽히다 못해 결국 새우등을 하고 옆으로 눕기도 한다. 딱따구리 둥지 앞의 가지에서 자라난 잎이 어느덧 둥지를 가리자 그는 관찰에 방해가 돼 가지를 자르려고 사다리차까지 불렀다가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까치와 붉은배새매 같은 천적들로부터 둥지를 지켜주는 잎을 보며 그때 안 자르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새끼를 지켜주는 이 좋은 은폐물을 제거하려 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깊이 반성합니다.”
관찰 13일째, 딱따구리 암수가 갑자기 정신없이 분주해졌다. 자세히 보니 부리에 먹이를 물고 있다. 드디어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고마움과 기쁨으로 가슴이 무척 두근거립니다.” 이날은 강의도 제치고 달려가고 싶을 만큼 김 교수의 마음이 달떴다.
김 교수는 때때로 딱따구리 부부가 공들여 만든 둥지를 보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딱따구리 부부는 절묘한 위치에 둥지를 지었다. 둥지는 남원 지역에 자주 부는 북풍과 남풍, 서풍을 피해 동쪽으로 나 있다. 둥지는 부러진 줄기의 밑동 바로 아래에 자리 잡았다. 비가 올 때면 완벽한 처마 노릇을 하는 이 가지 덕에 둥지 안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 그는 다시금 깨닫는다. “새 생명을 키워내는 일이 그리 허술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관찰 33일째, 이렇게 정성을 다해 키웠는데도 새끼 한 마리가 죽었다. 다시 학교로 향하는 김 교수의 발걸음도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김 교수는 딱따구리 가족과 혼연일체가 됐다. 새끼들을 남겨두고 암컷과 수컷이 모두 자리를 비우면 김 교수는 애가 타고, 먹이를 제대로 챙겨먹는 부부를 보면 정작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자신을 보며 약이 올라 살짝 눈을 흘긴다. “암컷과 수컷 모두 오랜 시간 둥지를 비운 통에 나는 애가 탔는데 저들은 영양보충을 하고 온 모양입니다.” 딱따구리 부부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는 까치와 붉은배새매를, 김 교수는 몹시도 미워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눈물이 다 날” 무렵이던 44일째. 그동안 둥지 속에서 먹이만 받아먹던 새끼가 둥지 입구까지 올라와 세상과 얼굴을 마주한다. 마치 방금 태어나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자기 아이를 보는 것처럼, 김 교수는 그토록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새끼의 모습을 봤다며 기뻐한다. 몸살과 허리 통증도 떨치고 다시 신바람이 났다.
새끼들이 자라면서, 이제 수컷은 새끼들과 함께 밤을 보내지 않는다. 새끼들의 홀로서기를 위한 ‘굶기기’와 ‘약 올리기’ 훈련은 야속하다 싶을 만큼 철저하다. “같이 있어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자식의 홀로서기를 돕는 게 더 큰 사랑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50일째가 되던 날, 이별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하던 김 교수 앞에서 갑작스레 딱따구리 가족이 사라진다. ‘첫째’ 새끼는 김 교수가 못 본 사이 둥지를 떠났고, ‘둘째’도 둥지를 박차고 나와 서툰 날갯짓을 하며 떠나갔다. 메모장 세 권과 사진 2만여 장을 남겨두고, 딱따구리 가족은 그렇게 홀연히 김 교수를 떠났다. 미루나무 구멍이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동안 몸과 마음을 앓으며 이별의 아픔을 삭이던 김 교수는 그해 여름, 다시 찾아간 미루나무 둥지에 말벌들이 깃들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일부를 떼어줌으로써 미루나무가 품어낼 생명은 앞으로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올해 대학에 연구년을 신청했다. ‘동고비’ 부부 관찰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이제 관찰 56일째다. 그동안 동고비 부부는 이름 모를 딱따구리 가족이 떠난 빈 둥지에 진흙을 발라 새롭게 단장했다. 이번에는 왜 동고비 부부를 관찰하기로 했을까? “딱따구리가 떠난 빈 둥지에 동고비 부부가 다시 생명을 키울 겁니다. 자연에서는 그냥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지요. 생명은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동고비 육아일기’가 자못 기대된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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