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 길에서> 황윤 감독 다큐멘터리 3월 27일 개봉
토종 거북 남생이가 도로변을 힘겹게 걸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좀 무뚝뚝한 인간적인 남자들(야생동물 교통사고 조사원)과 아주 많은 야생동물들의 주검이 등장한다. 인간을 위한 도로, 실은 인간들도 종종 희생당하는 그 길은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만들어낸 괴물의 공간이다. 길이 닦이기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야생동물들에게 그 도로는 여전히 자신들의 영토일 것이다. 야생동물들은 번쩍거리는 두 눈의 거대하고 빠른 동물들을 피해서 그 영역을 조심스럽게 건너다닐 것이다. 그런대도 그들은 어이 없이 죽어간다. 60km 이상을 달리면 운전자도 어쩔 수 없다는 속도. 이 영화는 그래서 도로 건설과 생태 통로를 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영화일까?
영화를 보는 80여분 동안 이곳 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들은 죽어가는 동물에게 미안해서 우는 것일까? 아니면 무수한 생명들을 바람결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그 체제에서 인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는 것일까? “경쟁에 온 몸을 던지라“고 명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압력 속에서 인간은 이제 다른 생명체와 별다름이 없이 내팽겨쳐지고 있는 자신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그 고속도로 위에서 죽어가는 무수한 생명들과 별 다름없이 보호막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성찰, 내게 이 영화를 그런 성찰을 하게 하는 영화로 읽힌다.
영화가 개봉하면 나는 황윤 감독의 첫 번째 작품, <작별>을 보러갈 것이다. <작별>은 <어느 날 그 길에서> 이전에 만든 작품으로, 선천성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원의 새끼 호랑이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야마가타 국제 다큐 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 수작이라고 하는데, 수작이 아니더라도 나는 작품을 보러 갈 것이다. 동물원에서 보호를 받는 목숨이건 야생에서 보호받지 못한 목숨이건 간에 별 차이가 없는 삶이 아닌가? 그 어떤 목숨도 보호받지 못하는 ‘생명 권력’의 시대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배제된 자들이 세상을 가득 매우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푸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예견했다.
"중세 군주들의 권리는 인민을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이었다. 19세기 근대에 새롭게 정착된 권리는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중에서)
글 : 조한혜정(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담당 : 미디어홍보위원회 홍보팀 박해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