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역습’ 부른 대한민국의 육식화
시사INLive | 변진경 기자 | 입력 2011.01.17 09:52 |
매일 수만 마리 가축이 땅속에 매몰된다. 공무원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가축을 끌어내고, 농부는 빈 축사를 보며 가슴을 친다. 도로에는 차 소독약이 얼어붙고, 매몰지 인근 도랑에는 생매장당한 가축들의 아픈 흔적, 핏물이 흐른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뒤덮은 2011년 대한민국의 새해 풍경이다.
강도가 다를 뿐 이 같은 공포는 최근 20년 간 그친 적이 없다. 2000년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 파동 때도, 2003년 포천·당진 등 27개 시·군을 휩쓴 돼지열병(돼지콜레라) 창궐 때도, 2008년 김제·논산에서 퍼진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때도 농민은 울고, 가축은 생매장당하고, 공무원들은 소·닭·돼지 고기 소비 촉진 시식 행사에 참여하는 풍경을 데자뷔처럼 반복했다. 가축에서 기원한 신종 질병인 신종 인플루엔자(돼지독감), 광우병,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공포도 매해 뉴스의 머리말을 장식했다.
육류 수출 22억원…방역비 8530억원
그간 우리나라가 가축 전염병으로 입은 손해는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동물이 살처분되고, 얼마나 많은 돈이 방역비에 들어갔을까? 그 내역을 알아보기 위해 2000년 이후 일어난 주요 가축 전염병과 관련된 정부 통계자료를 취합했다. 최근 10년간 국내 가축 사육과 생산·소비에 관한 통계도 모아봤다. 그 결과, 숫자들이 보여주는 대한민국은 가히 '동물의 역습'이 무섭게 펼쳐지는 현장이라 할 만했다.
2000년 이후 주요 가축 전염병으로 살처분된 소·닭·돼지·오리는 최소 1980만6972마리다. 이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 인구와 맞먹는 수치다. 소는 브루셀라병(8만4757마리)과 구제역(10만5627마리)으로, 돼지는 돼지열병(돼지콜레라·19만9211마리)과 구제역(93만5377마리)으로, 닭·오리는 조류인플루엔자(1848만2000마리)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다.
이에 따른 피해액은 2조2871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살처분 보상금과 소독약 비용 등 직접적인 방역 비용만 포함된 액수이다. 육류 유통업계의 영업 손실과 소비 위축 피해액, 관광수익 저하 같은 간접 비용을 더하면 수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0년 구제역(3006억원)과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3070억원) 파동 때의 피해가 가장 컸지만, 지난해 11월 안동에서 발생해 전국으로 확산된 2010년 3차 구제역(7000억원)이 그 둘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살처분으로 인한 보상금 액수가 만만치 않은데도, 그간 정부는 구제역 백신 접종을 마다하고 살처분 정책을 강행했다. 우리나라가 백신을 쓰지 않고도 구제역을 근절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축산 방역 시스템을 갖춘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것을 입증해, 수출과 수입 거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의 쇠고기·돼지고기 수출액은 22억원(196만9000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3차례 터진 구제역 파동에 쏟아부은 방역비 8530억원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다.
해외 수출량이 많지 않은 대신 국내 육류 소비량은 꾸준히 늘었다.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6.7㎏에서 8.1㎏으로 늘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소비량도 각각 17.8㎏에서 19.1㎏, 7.5㎏에서 9.6㎏으로 증가했다. 2002~2009년 축산업 총생산액 통계를 봐도 그간 대한민국이 '육식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2년 7294억원이었던 닭 생산액이 2009년 2조229억원으로 뛰는 등, 국내 소·닭·돼지 생산액은 10년간 2~3배 늘어났다.
이렇게 축산산업의 몸집이 커지게 된 데에는 2000년대 전후 진행된 '사육시설의 대형화'가 한몫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농가 수는 줄어든 대신 한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1990년에 한 농가당 평균 2.62마리이던 한(육)우가 2010년에는 16.86마리로, 34.05마리이던 돼지는 1237.63마리로 늘었다. 닭은 462.5마리에서 4만1051.88마리로 급증했다. 대한민국의 가축들은 이제 동물 '농장'이 아닌 동물 '공장'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가축 사육 방법 바꿔야 전염병 예방
농장이 커졌으니 가축의 사육공간도 넓어졌을까? 정반대이다. 돼지 한 마리에게 주어진 평균 농장 면적은 2001년 1.79㎡ (0.54평)에서 2010년 1.42㎡(0.43평)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또 1000마리 미만의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마리당 평균 면적이 0.57평인 데 비해 5000마리 이상 농가는 0.39평에 불과했다(2010년 조사). 사육 규모가 큰 농장에서 크는 돼지일수록 좁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위 도표 참조).
닭은 사정이 더 딱하다. 축산법이 규정하는 '가축사육시설 단위면적당 적정 가축사육기준'에 따르면 케이지(철망 우리)에 사는 산란계 한 마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0.042㎡. A4 용지에도 못 미치는 면적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 대비 가축 사육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9년 한국과 일본·오스트레일리아·미국의 소 사육 두수는 각각 310만·440만·2700만·9370만 마리. 절대치로는 우리나라가 가장 적지만, 각각의 국토 면적(한국 10만㎢·일본 37만7000㎢·오스트레일리아 769만2000㎢·미국 982만6000㎢)으로 나누면 우리나라의 소 사육 밀도(31마리/㎢)가 가장 높다. 돼지 사육 밀도(96마리/㎢) 역시, 같은 면적에 26.53마리, 6.65마리, 0.29마리를 키우는 일본·미국·오스트레일리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을 막는 길은 기존 가축 사육 방식과 육식 문화를 바꾸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희종 교수(서울대 수의학과)는 "세계화로 국가 간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생산성을 위해 밀집 사육을 하는 현 상황에서는 가축 전염병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가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값싼 고기를 빠른 시간 안에 생산하도록 부추기는 우리 육식 소비 문화를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강도가 다를 뿐 이 같은 공포는 최근 20년 간 그친 적이 없다. 2000년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 파동 때도, 2003년 포천·당진 등 27개 시·군을 휩쓴 돼지열병(돼지콜레라) 창궐 때도, 2008년 김제·논산에서 퍼진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때도 농민은 울고, 가축은 생매장당하고, 공무원들은 소·닭·돼지 고기 소비 촉진 시식 행사에 참여하는 풍경을 데자뷔처럼 반복했다. 가축에서 기원한 신종 질병인 신종 인플루엔자(돼지독감), 광우병,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공포도 매해 뉴스의 머리말을 장식했다.
ⓒ시사IN 조남진 |
그간 우리나라가 가축 전염병으로 입은 손해는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동물이 살처분되고, 얼마나 많은 돈이 방역비에 들어갔을까? 그 내역을 알아보기 위해 2000년 이후 일어난 주요 가축 전염병과 관련된 정부 통계자료를 취합했다. 최근 10년간 국내 가축 사육과 생산·소비에 관한 통계도 모아봤다. 그 결과, 숫자들이 보여주는 대한민국은 가히 '동물의 역습'이 무섭게 펼쳐지는 현장이라 할 만했다.
2000년 이후 주요 가축 전염병으로 살처분된 소·닭·돼지·오리는 최소 1980만6972마리다. 이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 인구와 맞먹는 수치다. 소는 브루셀라병(8만4757마리)과 구제역(10만5627마리)으로, 돼지는 돼지열병(돼지콜레라·19만9211마리)과 구제역(93만5377마리)으로, 닭·오리는 조류인플루엔자(1848만2000마리)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다.
살처분으로 인한 보상금 액수가 만만치 않은데도, 그간 정부는 구제역 백신 접종을 마다하고 살처분 정책을 강행했다. 우리나라가 백신을 쓰지 않고도 구제역을 근절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축산 방역 시스템을 갖춘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것을 입증해, 수출과 수입 거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의 쇠고기·돼지고기 수출액은 22억원(196만9000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3차례 터진 구제역 파동에 쏟아부은 방역비 8530억원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다.
이렇게 축산산업의 몸집이 커지게 된 데에는 2000년대 전후 진행된 '사육시설의 대형화'가 한몫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농가 수는 줄어든 대신 한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1990년에 한 농가당 평균 2.62마리이던 한(육)우가 2010년에는 16.86마리로, 34.05마리이던 돼지는 1237.63마리로 늘었다. 닭은 462.5마리에서 4만1051.88마리로 급증했다. 대한민국의 가축들은 이제 동물 '농장'이 아닌 동물 '공장'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농장이 커졌으니 가축의 사육공간도 넓어졌을까? 정반대이다. 돼지 한 마리에게 주어진 평균 농장 면적은 2001년 1.79㎡ (0.54평)에서 2010년 1.42㎡(0.43평)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또 1000마리 미만의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마리당 평균 면적이 0.57평인 데 비해 5000마리 이상 농가는 0.39평에 불과했다(2010년 조사). 사육 규모가 큰 농장에서 크는 돼지일수록 좁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위 도표 참조).
닭은 사정이 더 딱하다. 축산법이 규정하는 '가축사육시설 단위면적당 적정 가축사육기준'에 따르면 케이지(철망 우리)에 사는 산란계 한 마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0.042㎡. A4 용지에도 못 미치는 면적이다.
결국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을 막는 길은 기존 가축 사육 방식과 육식 문화를 바꾸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희종 교수(서울대 수의학과)는 "세계화로 국가 간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생산성을 위해 밀집 사육을 하는 현 상황에서는 가축 전염병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가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값싼 고기를 빠른 시간 안에 생산하도록 부추기는 우리 육식 소비 문화를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출처 : 밥따로 물따로
글쓴이 : 현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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