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고 순례자처럼 사는 게 만병통치약” | |||||
도법 스님 즉문즉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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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기자 | |||||
행복 환상 가져 불행…성 소수자 존중해야
지난 4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 강당에서 생명평화결사가 탁발순례를 마치며 마련한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란 주제의 여섯번째 즉문즉설에 탁발순례단장인 도법 스님이 나섰다. 석가모니 부처도 출가 이후 48년을 탁발승으로 살았다. 지난 5년 동안 지리산을 출발해 전국을 도보로 순례하며 먹을 곳과 잠잘 곳뿐 아니라 생명평화의 마음을 탁발한 탁발순례단장 도법 스님은 출발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청중들과 세 시간 동안 함께 호흡했다. 그는 자신이 제주 4·3사태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복자임을 고백했다. 그리고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의 개성과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데, 그 비법은? 예전엔 스님도 고통스런 표정이었나? “한창때는 친구들이 ‘너를 쳐다만 봐도 심각해진다’고 했다. 또 ‘가까이 가면 얼음 같은 차가운 기운에 몸이 떨린다’고도 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체념하고 포기하고 버리고 달관하면서 홀가분해졌다. 침묵 속에 걸음을 생활화하는 순례를 떠나는 것이 비법이다. 순례 중 무수한 사람을 만났는데, 누구도 괜찮은 사람이 없다. 다 죽겠고, 못살겠다고 한다. 괜찮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탁 내려놓고 순례자처럼 사는 것이 삶의 만병통치약이다.” -불교의 업과 윤회는 어떤 것인가? “많은 인간들은 자연법칙에 무지한 채 업의 법칙대로만 산다. 인간의 행위로 형성되는 것이 업력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업은 매우 주체적이고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실천행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조상 대대로 도둑질만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도둑질하지 않으면 도둑놈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전생에 계속 도둑질하고 살아왔어도 이생에 도둑질하지 않는 한 도둑놈이 안 된다. 핵심은 전생도 내생도 없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연애를 해봤는가? 이상형은?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의견은? -순례 다니며 교회나 성당에서 예수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예수 14처’ 그림을 본 소감은?
“앎이 참되면 행동은 저절로 나온다고 보았다. 예수님에겐 사랑의 길만이 참되고, 어떤 것도 참이 아니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갔다.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을 얘기하는데, 행동이 안 나오는 것은 앎이 참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비폭력 불복종 행동이 어떤 것인지, 압축적이고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스님의 삶에서 가장 기쁜 것 세 가지, 가장 슬픈 것 세 가지는?
“내 인생의 슬픔은 수만 가지인데 특별하게 이런 게 기쁘다고 하는 건 없다. 특별히 기쁜 것에 별 관심이 없다. 편안하고 홀가분하면 됐다. 기쁨과 행복에 대해 너무 환상들을 가지고 있어서 더 불행한 것이다. 인생이란 게 별것 없다. 세상에 별 사람도 없고, 별 길도 없다. 대동소이(大同小異·작게는 다르지만 크게는 같다)하다. 나는 특별하게 얘기할 만한 게 없는 사람이다.”
-고통을 재생산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유복자가 되었나?
“어려서 어머니가 사람들이 ‘아버지 왜 죽었느냐’고 물으면 ‘병 나서 죽었다’고 대답하라고 했는데 최근에서야 알았다. 아버지는 4·3(제주 4·3)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철조망을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한식구다. 외세와 이념의 바람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바람은 걷어치우고 한민족으로 함께 만나야 한다. 그래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그것이 생명평화운동이다.”
-스님은 먼저 삶이 개혁되기 위해선 자기 정제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했는데?
“부처님이 깨달은 법이 연기법이다. 모든 게 그물의 그물코처럼 연결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연기적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면 너 없인 나 못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산소·부모 없이 태어날 수 없다. 내 노력만으로 사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자기 혼자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도몽상(뒤바뀐 생각)이다.”
-불교 선방에서 참선만 하는 분들은 세상에 대한 빚을 어떻게 갚는가?
“빚을 졌으면 빚을 갚아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앉아 있는 것은 시비할 것은 없다.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연기론적 세계관이 없으면 뭐든 자기 문제로만 가게 된다. 오늘날 한국 불교가 이 지경이다. 조용히 은둔해 사느냐, 이 자체만은 문제가 아니다. 연기론적 철학을 갖고 있으면 은둔 생활을 하더라도 세상의 아픔을 갖고 살기에 정신을 놓고 살 수 없다.”
-사회자(황대권 선생이 청중을 향해): 질문 안 하면 후회한다.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도 괜찮다. 어떻게 후회 안 하고 살 수 있는가”
-스님이 말한 대로 비우고 싶어도 불안하기만 하다. 왜 이토록 아프고 불안한가?
“우리의 삶을 보자. 추위가 오면 아 추위가 싫다. 함께 하기 싫다고 한다. 여름이면 더위가 싫다며 함께 하기 싫다고 한다. 그렇다고 더위와 함께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추위가 오면 추위와 함께, 아침이 오면 아침과 함께, 저녁이 오면 저녁과 함께 그렇게 사는 것이다. 아픔이 없는 인생은 없다.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우리에겐 아픔이다. 그러나 그런 아픔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아픔을 회피하려는 게 환상이다. 우리의 삶이 만들어질 때부터 아픔은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은 ‘조현기자의 휴심정’(wel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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