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정봉] 8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농촌 마을에 조그마한 통나무집이 하나 서 있다. 고르지 못한 나무 외벽과 철판을 덧댄 이음새를 보니 평범한 통나무집 같았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땀이 주루룩 흘렀으나 기자가 안으로 들어가니 에어컨도 켜지 않았는데 시원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인 '에너지 전환(대표 윤순진 서울대 교수)'이 사무실과 교육실로 사용하는 곳이다.
상근 활동가인 송대원(55) 간사는 “벽과 지붕의 두께가 32㎝나 된다”고 했다. 단열재·방습재·합판을 11겹으로 만들어 겨울에는 열이 빠져 나가지 않아 따뜻하고, 여름에는 외부 열이 들어오지 않아 동굴처럼 시원하다는 것이다. 그는 “창문을 2중창으로 만들고 현관문도 공기 하나 빠져나가지 않게 밀폐에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도 설치돼 있다.
24㎡ 넓이에 건설비 1293만원을 들여 올 2월 지었다. 국내 최초의 '패시브 하우스'다. 난방비를 일반 건축물의 10%만 들여도 충분한 에너지 절약형 집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의미에서 '패시브(passive)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에너지 전환'의 대표를 지낸 이필렬(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가 설계를 맡았다.
건물 외관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전문적인 건축 인부 없이 이 단체 회원들이 틈틈이 바쁜 시간을 쪼개 손을 도와 완성했기 때문이다.
고유가 시대에 이 집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겨울철에 에너지를 90%나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 바깥 기온이 영하 7도로 떨어졌지만 안은 영상 7도를 유지했다. 실내에 60W짜리 백열전구 두 개만 켜도 실내온도는 15도로 올라갔다. 앞으로 1년간 난방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국내에 패시브 하우스 개념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마을 주민들도 이 단체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 2003년 자신의 집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했던 안정순(45) 홍동면 여성농어민센터장은 “태양광 발전과 패시브 하우스는 에너지 문제와 노후 대책, 지자체 재정 문제에 모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여 명의 활동가에 회원이 800여 명인 '에너지 전환'은 2000년 10월 설립됐다. 2003년 회원들이 모은 돈으로 서울 종로에 작은 태양광발전소를 세웠다. 2005년부터는 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팔고 있다. 지난해 7월 종로에 있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홍동면으로 내려왔다. 시민단체 가운데 현장을 찾아 사무실 전체를 옮긴 드문 사례다.
이 단체 김숙자(43) 간사는 “홍동면 지역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귀농한 사람들도 많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성=이정봉 기자
◇패시브 하우스=난방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패시브 하우스의 특징은 안에서 밖으로 새는 열을 철저히 막으면서도 실내는 환기를 통해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3중창을 설치하고 벽면도 보통 주택의 세 배인 30㎝가 넘는 단열재를 쓴다. 1991년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에 최초의 패시브 하우스가 들어섰고, 2006년 현재 독일에는 6000여 개, 오스트리아에는 1600여 개가 생겼다. 최근 일본 홋카이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때 공개된 'CO2 제로' 주택은 태양광 발전과 풍력터빈기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을 설치해 패시브 하우스와는 차이가 있다.
“유기농·친환경 앞선 홍동면 이젠 에너지절약 메카 될 것”
'에너지 전환' 송대원 간사
시민단체 '에너지 전환'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 일대를 신재생 에너지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단체의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송대원(사진)씨에게서 계획을 들어봤다.
-패시브 하우스 건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유가 시대에 기름 보일러를 돌리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연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패시브 하우스를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왜 홍동면인가.
“홍동면은 친환경 오리농법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는 등 유기농과 친환경의 메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도 있다. 태양광 전지를 설치한 집도 곳곳에 있다. 귀농한 사람도 많고 지역 주민들의 환경의식도 높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활동 지역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에서 생긴 단체가 지방으로 내려간 건 처음일 것이다. 회원들의 반대도 심했다. 홍보가 안 되고 활동 범위가 좁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서울은 아파트가 많아 '패시브 하우스' 보급이 어렵다. 보급이 가능한 지역에서 활동하기로 뜻을 모았다.”
-단체 운영은 어떻게 하나.
“정부 보조는 전혀 받지 않는다. 시민들의 교육 때 교육비를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100% 회원비로 운영한다.”
-계획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일단 기본 설계도를 마련해 이 지역에 '패시브 하우스'를 지어 나갈 계획이다.”
이정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