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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붉게 피는~~ ?? <펌>

두메풀 2008. 5. 25. 22:35

붉은 찔레꽃 띄운 백차를 마시며...
[포토에세이] 올해도 붉은 찔레꽃을 찾아 나섰습니다
임윤수 (zzzohmy)
▲ 6월만 되면 계절병처럼 붉은 찔레꽃을 찾아 나섭니다.
ⓒ 임윤수
요즘 들녘엔 찔레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밭둑은 물론 도랑둑에도 하얀 찔레꽃들이 함박눈처럼 수북하게 피어있습니다. 이른 봄, 돋아 오르는 새싹 찔레를 꺾어 아삭아삭 씹어 먹던 게 며칠 전 같은데 어느덧 웃자란 햇가지 주변엔 하얀 꽃들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이렇듯 만발한 찔레꽃만 보면 콧노래라도 부르듯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어렸을 때, 연줄처럼 길게 꼬리를 달고 있던 유선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찔레꽃이란 노래를 말입니다. 지금이야 채널만 맞추면 손가락보다도 작은 라디오에서도 온갖 방송이 다 나오지만 60년대 초,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 요즘 들녘을 나가면 온통이 하얀 찔레꽃입니다. 논둑은 물론 도랑둑에도 하얀 찔레꽃이 함박눈처럼 피어있습니다.
ⓒ 임윤수
징검다리처럼 아랫동네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있는 나무 전봇대를 타고 연줄처럼 기다랗게 연결된 전선 끝에는 집안 대청마루기둥에 걸려있는 스피커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별다른 장식이 달려있지 않은 스피커에는 음량을 조절하고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손잡이만 양쪽으로 하나씩 달려있었습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채널이라고 해봐야 기껏 두개 아니면 세 개였지만 말입니다.

스피커가 매달려 있던 마루기둥은 집안의 중앙쯤이 되었으니 큼지막하게 틀어놓은 스피커 소리는 집안 어디에서도 들렸습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스피커를 켜 놓으면 꼬맹이였던 우리들은 싫던 좋던 하루 종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 이른 봄, 뚝뚝 꺾어먹던 새싹 찔레가 어느새 어른 키만큼이나 웃자라 있습니다.
ⓒ 임윤수
그때 들었던 이런저런 노래 중 유독 이맘때만 되면 그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귓전에 쟁쟁거리며 기억에 떠오릅니다. 입술을 맴돌던 ‘찔레꽃 붉게 피어나는 남쪽나라 내 고향’이라는 노랫말은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타고 바람소리가 되어 허공으로 날려집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올해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얀 찔레꽃이 만발한 도랑둑으로 다가갔습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판 넘는 전축판(LP판)처럼 찔레꽃 노래의 앞부분을 반복하다보니 뭔가가 이상합니다.

‘어! 노래에서는 찔레꽃이 붉게 피어난다고 하였는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지금 보고 있는 찔레꽃들은 온통 흰색 찔레꽃뿐이네’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졌었습니다.

‘이거 뭐야?’
‘옛날에는 찔레가 붉었는데 환경이 바뀌면서 흰색으로 변한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껏 붉은 찔레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을 텐데...’

▲ 스님께서는 가을과 겨울에도 붉은 찔레꽃 향과 행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며 이렇게 차 거리로 마련을 하였습니다.
ⓒ 임윤수

흰색뿐인 찔레꽃을 붉은 찔레꽃이라고 표현한데는 혹시 알지 못하는 시대적 배경, 독립투사들의 뜨거운 애국심 같은 것이 감춰진 것은 아닐까 하는 등등의 상상력이 동원되기 시작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노랫말에서 시작된 찔레꽃에 대한 의문은 이맘때만 되면 계절병처럼 궁금증으로 찾아들었었습니다. 이처럼 이맘때만 되면 계절병처럼 앓아야만 했던 붉은 찔레꽃을 1년 전 이맘때서야 눈으로 마시고 숨결로 더듬어 가는 찻잔에서 만났었습니다. 올해도 그 붉은 찔레꽃을 만나려고 작년에 붉은 찔레꽃을 보았던 그곳을 지난 토요일(3일)에 찾았습니다.

▲ 비록 한 송이의 찔레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심어줄게 분명합니다.
ⓒ 임윤수

붉은 찔레꽃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께도 있었고 그 전에도 있었겠지만 단지 보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붉은 찔레꽃은 흐드러지게 핀 그 하얀 찔레꽃 사이에 숨바꼭질을 하듯, 감춰진 새색시의 수줍은 미소처럼 엷은 분홍빛으로 도랑둑 찔레넝쿨에 아스라하게 피어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그냥 흰색 찔레꽃인 듯 그 분홍빛이 몹시도 엷었습니다.

혹시 눈이 피곤해 흰색찔레꽃이 붉게 보이는 것은 아닌가가 염려되어 가시덩굴을 헤쳐 보았습니다. 선명하게 붉은 찔레꽃과 분홍빛 꽃 몽우리가 수줍도록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햇살에 드러난 꽃들은 거반 탈색이라도 된 듯 지극히도 엷은 분홍빛이었지만 가시덩굴 속, 이파리 그늘 깊숙한 곳에서 피어난 꽃과 몽우리들은 또렷한 분홍빛이었습니다.

▲ 조심스럽게 채취해 정성스레 손질해 말린 붉은 찔레가 누군가를 위해 병 속에서 행복을 숙성시키고 있습니다.
ⓒ 임윤수

어찌 된 것인지가 궁금하여 작년에 붉은 찔레꽃을 안내해준 보탑사 주지 능현 스님에게 단편적이나마 찔레꽃의 생태를 여쭸었습니다. 스님께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른 아침엔 선명하게 분홍색을 띠던 찔레꽃들이 햇살에 드러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분홍색이 엷어지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거반 흰색처럼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오후쯤 작게 맺혔던 몽우리들이 다음날 아침이면 붉은 찔레꽃으로 피어났다 이렇듯 오후가 되면 그 색이 엷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몽우리를 맺고 만개 하는 속도가 아주 빠른 모양입니다.

온 몸이 붉어질 만큼 뜨거운 마음, 분홍빛 색깔 속에 담겨진 이런 감정과 저런 연정을 행주치마 자락에 감추던 새댁의 맘처럼 햇살에 드러나는 한낱 동안에는 붉은 찔레꽃도 본연을 감추는 가 봅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이불 속을 파고드는 새댁의 몸짓처럼 찔레꽃도 그 열정이 드러나니 아침에도 그 뜨거움이 남아 산뜻하고도 붉은 찔레꽃으로 보이는 가 봅니다.

▲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맹물, 백차에 찔레꽃을 띄우니 잡맛이나 잡향 없는 오롯한 찔레 향 뿐입니다.
ⓒ 임윤수

그러고 보니 찔레꽃은 부지런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에게만 아름답고 고고한 분홍빛 자태를 드러내는 가 봅니다. 밤샘의 뜨거움을 아침만 되면 시치미 뚝 떼는 새댁의 자태처럼 말입니다. 킁킁거리며 가시넝쿨 속 붉은 찔레를 눈에 담고 카메라에 그려 넣습니다. 6월의 풋풋한 풀 내와 함께 더불어 다가오는 찔레 향, 붉은 찔레꽃의 은은한 분홍빛이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스님께서는 붉은 찔레꽃에서 우려낼 수 있는 향과 행복감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며 찔레꽃들을 모으고 계셨습니다.

▲ 백차 잔에 담겨있던 그 무한대의 깔끔함 속에 풍덩 온몸을 적시고 나니 몸과 마음, 마음과 몸,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향기며 행복입니다.
ⓒ 임윤수

조용한 저녁시간이나 이른 아침, 산사의 고요함이 흩어지지 않은 시간에 찔레꽃이 있는 곳으로 가 몽우리나 꽃을 채취해 조심스레 손질해 유리병에 담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볼 수 있는 찔레나무는 손대지 않고 일부러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야만 닿을 수 있는 곳에 핀 찔레나무를 찾아 꽃들을 채취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게 채취하고 손질된 찔레꽃이 가득 담긴 유리병을 꺼내오더니 깔끔한 백차 잔에 찔레꽃 한 송이를 동동 띄워주십니다.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맹물, 뭔가를 넣거나 우려내지 않고 무색·무취·무미의 맹물만을 찻잔에 채워 마시는 것을 백차라고 합니다. 맹물이 무슨 차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이 백차가 입안과 마음을 개운하게 해주니 여느 차보다 좋을 수도 있습니다.

▲ 산사조차도 찔레꽃에 풍덩 담가지니 산사를 찾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통이 찔레향입니다.
ⓒ 임윤수
잡 맛이나 잡 향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백차 잔에서는 찔레꽃 향만이 오롯하게 피어납니다. 그 크기를 가늠 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백자의 찻잔에는 세상만사를 다 씻어줄 듯한 정안수 같은 맹물과 찔레꽃 한 송이만이 향기롭게 담겼을 뿐입니다.

찻잔을 들어 올려 입술로 가져갑니다. 찻잔, 백자의 촉감이 입술에 닿기도 전에 깔끔한 찔레향이 윙크라도 하듯 후각 속으로 파고듭니다. 신음이라도 하듯 ‘흐읍~’하며 심호흡을 하며 깊게 들이마시는 숨결 속에 찔레꽃과 향들이 만개합니다.

입술로 다가간 찻잔, 기울어진 찻잔에서 흘러나온 백차가 입술을 촉촉하게 적셔옵니다. 입술을 헤집고 혓바닥으로 고여 든 찻물을 동그랗게 모아 입안에서 굴려봅니다.

한입 가득 물렸던 엄마의 젖꼭지에서 쏟아지던 따끈한 젖처럼 무미무취의 찻물에서는 찔레 향과 행복감이 끊이지 않고 우러납니다. 혀끝에 머물며 엄마의 젖꼭지처럼 느껴지던 찻물과 차 향에서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느껴지고 유두가 느껴지니 그 촉촉함과 백차의 탄력이 짜릿하도록 감정을 자극합니다.

입안에서 한참을 굴리던 찻물이 미끄럼을 타듯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지금껏 눈앞에 머물던 찻잔, 백차와 찔레꽃이 담겨있던 찻잔 속으로 풍덩 뛰어든 느낌입니다. 찔레꽃에서 피어나던 그 향기로움, 백차 잔에 담겨있던 그 무한대의 깔끔함 속에 풍덩 온몸을 적시고 나니 몸과 마음, 마음과 몸,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향기며 행복입니다.

입 안 가득 물었던 찰나의 행복감과 짜릿함을 허공 속으로 ‘후우~’ 불어냅니다. 6월의 들녘에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여름 한철을 아름답게 열어주는 붉은 찔레꽃과 백차의 깔끔함에서 우려낸 행복이 가득한 찻잔을 손에 들고 흘러간 그 노래, 찔레꽃이란 노래를 흥얼거리듯 입술사이로 흘려봅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이렇듯 분홍빛 붉은 찔레도 햇살에 드러나면 거반 흰색으로 변색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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